정약용에 관한 고찰
목차 ●정약용 ●생애 ●철학사상 ●평가 본문 2. 천주교 박해연루 1800년 천주교를 일시적인 종교적 현상으로 이해하여 묵인하는 온건한 정책을 펴던 정조 임금이 승하하자, 이듬해 정월 조선 천주교회는 대왕대비 정순왕후 김씨의 천주교 탄압령을 시작으로 박해를 받았는데, 이를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신유박해(辛酉迫害)라고 부른다. 신유박해는 천주교 탄압을 빌미로 남인을 제거하기 위한 노론의 정치적 공격으로, 이가환(李家煥)권철신(權鐵身)이승훈(李承薰)최필공(崔必恭)홍교만(洪敎萬)홍낙민(洪樂敏)최창현(崔昌顯) 등이 연루되었으며, 이 박해에 정약용과 그의 두 형인 정약전(둘째 형), 정약종(셋째 형)도 연루되었다. 정약용과 그의 둘째 형 정약전은 정약종과는 달리 이미 천주교를 버린 뒤였으나, 노론에서는 이미 이들을 제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약종만 천주교 신자일 뿐, 정약전과 정약용은 천주교에 무관심한 비신자라는 점이 확인되면서 사형에서 유배로 감형되었다. 그리하여 정약용과 정약전은 유배되었으며, 정약종은 천주교 신앙을 버리지 않아 장형을 받던 중 죽었다. 정약용은 18년간 경상도 장기, 전라도 강진 등지에서의 이 유배 기간에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의 저술 대부분이 이루어졌다. 본문내용 학을 통해 서양의 과학 지식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주요 저서는《목민심서》,《경세유표》등이 있다. 본관 나주(羅州). 자 미용(美鏞)송보(頌甫). 초자 귀농(歸農). 호 다산(茶山)삼미(三眉)여유당(與猶堂)사암(俟菴)자하도인(紫霞道人)탁옹(翁)태수(苔)문암일인(門巖逸人)철마산초(鐵馬山樵). 가톨릭 세례명 안드레아. 시호 문도(文度). 광주(廣州)(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출생이다. 1776년(정조 즉위) 남인 시파가 등용될 때 호조좌랑(戶曹佐郞)에 임명된 아버지를 따라 상경, 이듬해 이가환(李家煥) 및 이승훈(李昇薰)을 통해 이익(李瀷)의 유고를 얻어보고 그 학문에 감동되었다. 1783년 회시에 합격, 경의진사(經義進土)가 되어 어전에서 《중용》을 강의하고, 1784년 이벽(李蘗)에게서 참고문헌 위키백과 인터넷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