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25일 수요일

부산과 리버풀 항구도시로서의 성장과 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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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Ⅰ. 서론

부산은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 제1의 항구도시다. 선사시대부터 대륙문물을 일본으로 전파하는 통로 구실을 한 부산은 1407년 왜관 설치로 항구 역사가 시작됐다. 1876년 일제의 통상압력에 의해 개항, 신식 서양문화 유입의 창구가 된 뒤 잇단 매축 및 항만시설 공사와 도시개발이 이뤄져 근대식 항구도시의 골격을 갖췄다. 하지만 1945년 광복 전까지 무역항보다는 일본의 대륙침략 전초기지가 됐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부산은 1936년 인구가 고작 20만명이었으나 광복 후인 1948년 귀국동포 유입으로 50만명을 넘어서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임시수도가 되면서 피난민이 몰려 지난 55년 100만명을 돌파, 63년 경남도청 소재지에서 직할시로 승격했다.
이후 부산은 한국 제2도시로서 합판·신발·섬유·조선공업과 수산업이 발달한 국내 최대의 수출산업기지 역할을 하며 경남 김해·양산시 일부를 흡수, 시역을 넓혀 왔다. 지난 95년 인구 390만명의 국제적 대도시가 되자 광역시로 탈바꿈, 지방화시대를 열었다. 이와 함께 세계 국제항들과 어깨를 겨루며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현재 한국 해상수출화물의 40%,컨테이너화물 85%,전국수산물 40%를 처리하고 있다. 2003년 초까지 수년간 컨테이너 처리량이 홍콩,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할 정도로 세계적 항만도시로 도약해 동북아 허브항을 꿈꾸며 용틀임하고 있다.
반면에 리버풀은 800년에 걸친 항만의 역사를 가진 도시이다. 과거 맨체스터에서 만든 상품을 수출하며 노예를 미국으로 보내고 대신 면화를 수입하면서 번성했던 리버풀에는 1840년대에 아일랜드사람들이 대량으로 유입하여 정착하였다. 리버풀은 영국에서 세 번째로 분주한 유역인 Mersey강에 위치하고 있으며 맨체스터 Ship Canal과 함께 120,000개 기업과 대런던(greater London)의 인구와 맞먹는 사람들의 경제활동을 떠받치고 있는 항구를 가진 도시이다. 리버풀항만은 강 양안에 1,200에이커 규모를 차지하고 있으며 영국의 주요 컨테이너항만으로서 1년에 700,000TEU를 처리하고 있으며 영국과 아일랜드사이에 화물수송을 담당하는 항만이다.




≪ … 중 략 … ≫




Ⅱ. 본론

1. 역사로 본 부산과 리버풀

부산(1876년 개항)은 일본이 요코하마(1859년 개항)를 미국에 개항하면서 근대국가로 발돋움하기위하여 우리나라에 미국이 사용한 방식을 이용하여 운요호사건을 계기로 강화도조약을 맺고 강제로 개항한다. 그리하여 초량왜관은 조계지로 부산 일본 전관거류지로 개방되었다. 초량왜관은 양항의 입지로 앞에는 영도가 있고 영선산을 옆에 끼고 있었다. 부산은 낙동강을 배후로 하여 넓은 평야지대를 갖고 있으며 일본에게는 대륙침탈의 교두보로서 안성맞춤의 입지였다. 부산은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였고 이미 왜관이 설치되어 있던 곳으로 일본인에게 익숙한 곳이었다. 그리고 개항이후, 부산은 일제의 대륙침탈기지로서 공업과 항만시설 및 교통이 발달하며 도시의 내부구조를 갖춰갔다.


목차
부산-리버풀: 항구도시로서의 성장과 쇠퇴

Ⅰ. 서론

Ⅱ. 본론
1. 역사로 본 부산과 리버풀
2. 현대에 들어선 도시 리버풀과 부산
3. 리버풀의 쇠퇴로 본 부산의 현 문제점
4. 항구도시 부산의 발전 방향

Ⅲ.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