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6일 수요일

한문국사학 한국독립운동사-신민회 학사 척독 산문의 미학


한문학사 척독 산문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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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며

2. 척독 소품문

1) 척독 소품문의 성격

2) 척독 소품문의 실례

3. 맺음말



본문
2) 척독 소품문의 실례

(1) 연암 박지원의 척독

박지원(1737-1805)의 척독 작품의 일상생활의 애환, 벗들 간의 진한 우정, 점잖은 충고와 신랄한 풍자, 낄낄대는 해학 등 폭넓은 내용이 담겨있다.

&#8227; <답경지(答京之)1>


-> 이별의 말이 야단스러워도 이른바 ‘천리 길에 그댈 보내매 마침내는 한번 이별일 뿐이니 어찌하나’ 하는 것일세. 다만 한 가닥 가녀린 정서가 이리저리 감겨 면면이 끊어지지 않아, 마치 허공 속의 허깨비 꽃과도 같구려. 와도 어디로조차 오는지 모르겠고, 떠나가도 다시금 애틋할 뿐이라오. 접때 백화암(百華菴)에 앉아 있는데, 암규(庵圭)인 처화(處華)가 먼데 마을에서 바람결에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국사학 한국독립운동사-신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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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신민회의 조직

2. 신민회의 목적과 이념

3. 신민회의 활동

4. 일제의 105인 사건의 조작과 그 내용

5. 재판과정과 사건의 결말

6. 신민회 해체 이후 주요인사

※참고문헌



본문
2. 신민회의 목적과 이념

신민회의 궁극적 목적은 첫째, 국권을 회복하여 자유독립국을 세우고 둘째, 그 정체를 공화정제로 하는 것이었다. 신민회가 국권회복 후의 정체를 전제군주제의 입헌군주제로의 개혁으로 하지 않고 군주제를 폐지하여 공화국을 세울 것을 공식적 목표로 한 것은 한국역사상 최초의 획기적인 일이었다.
신민회에 앞서 독립협회 때에는 전제군주국의 입헌국주국으로의 개혁을 공식 목표로 삼았으며, 공화국으로의 개혁은 만민공동회의 소수의 청년들 사이의 이상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10년 후 신민회에 이르면서 입헌군주국 역시 낡은 것으로 인식되고, 처음부터 국권회복 후에는 공화정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 목표가 된 것이다.
신민회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국민족은 당장 힘이 없어 일제에게 국권을 박탈당했으므로 무엇보다도 실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하였다. 신민회는 실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백성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신국민>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신민회가 민주주의 사상에 기초하여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국가의 부강은 국가를 이루고 있는 국민의 부강에서 나온다는 사상에 의거하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민회의 이름을 나타내는 신민은 바로 이러한 뜻에서 취한 것이었다.
신민회는 또한 이러한 <新民>은 타국의 도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하는 <自新>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신민회는 이러한 <自新>의 내용으로 ①新思想(신사상) ②新敎育(신교육) ③新道德(신도덕)④新文化(신문화) ⑤神實業(신실업) ⑥新政治(신정치) ⑦新熱心을 제창하고 이를 수행하여 신국


본문내용
협회 1907년 11월 10일 창립한 한말의 정치단체. 대한협회는 애국계몽단체였던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가 1907년 8월 일제 통감부에 의해 강제 해산된 뒤, 윤효정(尹孝定)장지연(張志淵) 등 이전의 대한자강회 간부들과 천도교 대표로서 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등이 조직.
와 더불어 한말의 대표적인 전국 규모의 애국계몽단체였으나, 대한자강회대한협회가 합법단체였던 것과는 달리 비밀결사였다.
신민회의 창립은 재미 애국지사들의 구국단체 결성 의지로부터 발원하였다. 안창호이강임준기 등 재미 애국지사들은 1906년 말부터 1907년 초 연말연시에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을사조약을 통하여 일제의 보호국체제 하에 있는 조국의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대한신민회의 창립을 발의하고 이 단체를 본국에도 조

참고문헌
※참고문헌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 편, 『한국독립운동사전』, 2004.
신용하,「신민회의 창건과 그 국권회복운동」, 『한국민족독립운동사연구』, 을유문화사.
이재순, 「한말 신민회에 관한 연구」, 『이대사원』14.
이현희,「임정주석 양기탁의 항일투쟁과 대동민국임시정부 연구」,경주사학. 제27집, 2008.
유영렬,『애국계몽운동, 1 : 정치사회운동』,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7.
노용필, 한철호, 『대한제국기 서울 사람들』 어진이, 2004.

를 듣고는 그 비구인 영탁(靈托)에게 게(偈)를 내려 말하더이다.
“탁탁 톡톡 하는 소리 어디 먼저 떨어질꼬?”
그러자 영탁이 합장하면서 말하더군요.
“앞도 아니요 뒤도 아니니 들은 바로 그 지점이지요.”
어제 그대가 정자 위에서 난간을 돌며 서성거릴 때 나 또한 다리 께에서 말을 세우고 있었는데, 그 사이의 거리가 하마 1리 남짓 되었더랬소. 모르겠소만 그때 우리 두 사람이 서로 바라보던 곳도 바로 그 사이가 아니었겠소?”

답경지(答京之)1 에서는 두 사람의 애틋한 마음을 품고 헤어진 후, 지워지지 않는 긴 여운을 적고 있다.
연암 척독 소품의 가장 큰 특징은 정취와 예술성의 추구에 있다. 예술성의 추구는 기본적으로 철학적 미감에서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끈끈한 정의 유대에 바탕을 둔다. 연암의 척독은 영상으로 그려지는 장면들과 정서의 물결이 파동치는 시적 함축을 머금은 표현을 통해 말로는 전달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들을 절묘하게 그려낸다.


&#8227; <여초책與楚&#24152;>




본문내용
과, 미세한 감정과 개성을 자유로이 표현하는 특징을 가졌으며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기보다는 무게가 가벼운 주제를 다룬 산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尺牘은 서독류로써 편지글에 해당한다. 독(牘)은 나무 판자에 글을 써 보낸 것으로 비교적 단소한 내용을 담아야 하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尺牘은 소품문의 특성을 잘 갖추고 있는 하위 장르이다. 편지는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소통창구이지만 조선후기 문인들에게는 적극적인 문예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18세기 이후부터 기존의 글쓰기가 다채로운 새로운 문체와 문학 창작이 ‘소품문’이라는 형식으로 드러나고 있었으며 척독이 소품문과 결합하여 문예적인 측면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조선후기 척독 소품의 문예미를 논하는 것에 있어, 척독은 마음이 통하는 사람

참고문헌

참고문헌

허균 지음, 김풍기 옮김, 『누추한 내방』, 태학사, 태학산문선, 2004.
박지원 지음, 박희병 옮김,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 돌베개 2005.
진필상 지음, 역자 심경호, 한학연구총서4 『한문문체론』, 이회문화사, 1995.
정민, 「연암 척독소품의 문예미」, 한국한문학연구, 2003.
강혜선, 『나 홀로 즐기는 삶』, 태학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