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공주
목차 Ⅰ. 발해의 건국 및 성장 Ⅱ. 정혜공주와 정효공주 Ⅲ. 발해의 고구려 계승의식 Ⅳ. 발해의 홍라녀 전설 Ⅴ. 결론 본문 3. 정혜공주묘와 정효공주묘 (1) 공통점 ① 두 공주의 무덤간은 지면에서 경사진 땅을 2m이상 깊이 파서 고르게 한 다음 네 벽을 쌓아올렸다. 바닥은 장방형 검은 벽돌로 줄을 지어 깔고 회를 발랐다. ② 바닥의 복판에는 관대를 만들었다. ③ 천정은 모두 크고 넓은 판돌이며, 네 벽 위에 1~2단의 평행고임을 하고 그 위에 다시 2단 정도의 3각고임을 하였고 마감으로 그 복판에 천정돌을 덮었다. ④ 두 공주의 무덤은 모두 대체로 무덤간, 무덤안길, 무덤바깥길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구성형태는 같다. ⑤ 두 공주의 무덤은 모두 남향이다. ⑥ 두공주의 무덤은 독립적인 능묘를 형성하지 못하고 모두 배장(陪葬)하였다. (2) 차이점 ① 매장한 무덤의 지점, 발해 왕실무덤떼 가운데 그들의 위치 그리고 다른 무덤들의 관계가 같지 않다. ② 두 공주무덤의 구조가 같지 않다. 정혜공주묘는 ‘석실봉토묘’이고 정효공주묘는 ‘전실봉토묘’이다. 본문내용 대조영의 발해 건국(698) (1) 고구려 부흥 운동 (2) 발해의 건국 과정 거란의 추장의 반란 -> 말갈인과 고구려 유민규합(대조영) -> 길림성 동모산에 도읍을 정하고 발해건국 (3) 발해 건국의 역사적 의의 발해의 건국으로 통일 신라와 발해가 남북에서 대립하는 형세 (4) 발해의 주민 구성 고구려인(지배층) + 말갈인(피지배층) 2. 발해의 전성기 : 9세기 전반 10대 선왕 3. 발해의 영역 북쪽으로는 헤이룽 강, 동쪽으로는 연해주, 서쪽으로는 요동, 남쪽으로는 영흥 지방에까지 이르러, 고구려의 옛 땅을 대부분 되찾았다. 4. 발해의 멸망 (926) 9세기 후반부터 국력이 약화되어 결국 거란족에게 멸망 Ⅱ. 정혜공주와 정효공주 1. 정혜공주 (발해 3대 문왕의 2번째 딸, 737 ~ 777 참고문헌 연변대학교 : 발해사연구(연변대학출판사, 1993) 최원오 : 한국 고전산문의 탐구(월인, 2002) 서병국 : 발해제국사(서해문집, 2005) 고광의외 10명 : 발해의 역사와 문화(동북아 역사제단, 2002) |